[궁금하면 공감] 요즘 14억 중국인 취업 현실

이미지
요즘 14억 중국인  취업 현실 인구가 14억 명이나 되는 중국이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현재 중국은 일자리가 많이 부족한 ‘ 심각한 구직난 ’을 겪고 있습니다. 인구가 많은 만큼 시장이 크고 일자리 절대다수도 많을 것 같지만, 공급(일하려는 사람)이 수요(기업의 채용)를 훨씬 초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젊은 청년층이 겪는 취업난은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로 매섭습니다. 중국의 일자리가 왜 이렇게 부족해졌는지 핵심적인 이유 3가지를 짚어드릴게요. 1. 대학 졸업자는 역대 최다, 화이트칼라 자리는 급감 중국은 매년 부모 세대의 엄청난 교육 열풍을 타고 대학 졸업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2026년 올해에만 무려 1,270만 명의 대졸자가 사회로 나옵니다. 하지만 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깨끗하고 안정적인 사무직(화이트칼라)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과거 청년들을 대거 흡수하던 고소득 IT 대기업, 대형 학원 산업(사교육 규제 여파), 부동산 업계가 줄줄이 위축되면서 청년들이 갈 곳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2. 눈높이의 불일치 (일자리 미스매치) "공장이나 현장직 일자리는 사람 구하기 힘들다"는 말이 중국에서도 나옵니다. 하지만 고학력 청년들은 고생스러운 블루칼라(제조·생산직) 일자리를 기피합니다. 대학까지 졸업했는데 배달 라이더나 공장 노동자가 되고 싶지 않은 심리적 저항선이 강한 것이죠. 즉,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부족하고, 청년들이 기피하는 일자리는 남아도는 미스매치 현상이 심각합니다. 3. 청년 실업률로 보는 차가운 현실 중국 정부가 학생을 제외하고 통계를 대대적으로 수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중국의 16 ~ 24세 청년 실업률은 16% 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취업 포기자'까지 합하면 실제 체감 실업률은 30% 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전체 도시 실업률인 5% 안팎에 비하면 유독 젊은 세대만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 중국 MZ세대...

[그떄 그 시절] 고구려·백제·신라 임금차이

 


※ 백제 싫어서 안넣은게 아니고 땅 자료 못구했습니다. 백제땅 양해바랍니다. ㅠ_ㅠ


고구려·백제·신라 임금차이


삼국시대는 고구려, 백제, 신라로 대표되는 고대 국가들이 한반도에서 각기 다른 정치·사회 구조를 갖고 발전하던 시기입니다. 그만큼 신분 제도나 행정 체계, 그리고 관료에게 지급되는 ‘임금’ 또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왕족, 귀족, 중소 관료, 그리고 일반 백성의 경제적 삶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삼국의 급여 제도를 통해 각국의 행정력과 사회 구조를 심층 탐구해보겠습니다.




고구려 급여 체계의 특성과 구조

고구려는 초기에는 군사 중심의 사회였고, 중앙집권화가 진행되며 관료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관직별로 일정한 급여가 지급되는 제도가 나타났습니다. 고구려의 관료는 대부분 귀족 출신으로, 이들에게는 토지와 노비, 곡식, 물품 등의 형태로 보상이 제공되었습니다.

특히 고구려는 ‘경위제(京位制)’라고 불리는 중앙 관직 체계를 운영했으며, 관등은 14등급으로 세분화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본인의 관등에 따라 땅을 나누어 받고, 농민을 부려 농산물이나 공물을 통해 실질적인 ‘임금’을 받았습니다. 1등급인 대대로는 왕족과 고위 귀족이 독점했으며, 이들은 수천 석의 곡물을 세금으로 받았고, 전쟁에서 전리품도 상당 부분 차지했습니다.

하위 관료나 지방의 촌장급 관리들도 일정량의 공물을 받았지만, 고위층과의 격차는 매우 컸습니다. 왕족과 귀족은 토지와 인력을 소유하며 반자율적인 지배를 할 수 있었던 반면, 일반 서민은 세금과 군역 등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매우 컸습니다. 고구려의 급여 체계는 일종의 봉건적 성격을 띠고 있어, 오늘날의 급여 개념과는 차이가 있으나, 그 나름의 ‘경제적 보상 시스템’이 분명 존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백제의 신분제와 급여제도의 특징

백제는 고구려보다 좀 더 유연한 관료제를 가지고 있었으며, '관등제(官等制)'와  '내신좌평제'**라는 체계를 통해 국가 운영을 관리했습니다. 특히 백제는 중앙 귀족의 권한이 강했고, 이들이 지방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급여 체계도 귀족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백제의 관등은 16등급까지 나뉘며, 6등급 이상을 ‘좌평’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들은 행정, 군사, 의례, 사법 등 국가 기능을 분담했고, 좌평 이상은 왕으로부터 금, 포, 벼 등의 실물 급여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화폐보다 실물경제 중심이었기 때문에 급여 역시 쌀, 옷감, 말, 토지 등의 형태로 지급되었습니다.

일반 관리나 군사 계급은 매년 정해진 양의 곡물과 의류를 받았으며, 지방 관리나 중소 귀족도 지방 세력을 통해 스스로의 경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서민층은 세금과 부역의 의무가 있었지만, 전쟁 포로나 부역자로 징발될 경우 일정한 품삯 형태로 곡물이나 포(布)를 받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는 백제가 다른 삼국보다 상대적으로 실용적이고 유연한 급여 운영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신라의 골품제와 보상 구조

신라는 삼국 중 가장 체계적인 '신분제도인 ‘골품제(骨品制)’ 를 통해 사회 구조를 형성했습니다. 이에 따라 관직 진출은 물론 받을 수 있는 급여의 수준도 골품에 따라 명확히 구분되었습니다. 진골 귀족은 최고위직을 독점했으며, 6두품, 5두품 등의 중간 신분은 중소 관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신라의 관직은 17관등 체계로 이루어졌으며, 각각의 관등에 따라 지급되는 실물 급여가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보상으로는 벼, 보리, 옷감, 말, 농기구 등이 있었고, 특히 ‘식읍(食邑)’과 ‘녹읍(祿邑)’ 제도를 통해 토지세 수입을 제공받았습니다. 식읍은 공신이나 고위직에게 주는 형식이고, 녹읍은 일반 관료의 급여 개념으로 운영됐습니다.

서민 계층은 농사와 수공업을 통해 생계를 이어갔고, 국방과 토목 등의 부역에 참여하면 일정량의 곡식이나 의복을 품삯으로 받았습니다. 주목할 점은 신라가 통일 이후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면서, 급여의 표준화 및 관리감독 체계를 정비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삼국 중에서도 가장 현대적 급여 시스템에 가까운 운영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리 및 요약: 삼국의 임금제도는 사회구조의 축소판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기 다른 관직 구조와 신분제도를 바탕으로 한 급여 시스템을 운용했습니다. 고구려는 군사 중심의 봉건적 구조, 백제는 실용 중심의 분권적 구조, 신라는 신분제 기반의 체계적 보상 구조를 보였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월급제는 아니지만, 실물로 지급된 보상은 당시 사회에서 생존과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였습니다. 이처럼 임금 체계를 통해 각국의 사회 구조와 권력 분포를 이해할 수 있으며, 현대 사회와의 차이점과 연결점 또한 발견할 수 있습니다.



※ 고구려 화폐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한국프로야구 우승하면 뭐가 좋을까? KBO 리그 최신 혜택 정리

[건강정보] 한의원 한약 가격이 많이 비싼이유.

04월 21일 과학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