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크 (Spark) 경차 단종된 이유

이미지
스파크 (Spark) 경차 단종된 이유  마티즈의 뒤를 이어 한국 경차의 한 축을 담당했던 **쉐보레 스파크(Spark)**는 2022년 9월 생산을 종료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30년 넘게 이어진 한국지엠(GM)의 경차 계보가 끊긴 데에는 몇 가지 결정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1. GM의 글로벌 전략 변화: "수익성 우선" 가장 큰 이유는 본사인 제너럴 모터스(GM)의 포트폴리오 재편입니다. 저마진 구조 탈피: 경차는 대당 마진(이익)이 매우 낮습니다. GM은 수익성이 낮은 소형 해치백 대신 마진이 높은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와 CUV(크로스오버) 중심으로 라인업을 개편했습니다. 전기차(EV) 집중: GM은 '얼티엄'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전기차 전환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며, 내연기관 경차에 대한 재투자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2. 창원공장의 생산 라인 전환 스파크를 생산하던 창원공장은 GM의 글로벌 전략 거점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차세대 CUV(트랙스 크로스오버)  생산: GM은 창원공장에 약 9,000억 원을 투자해 최첨단 도장공장과 생산 설비를 갖췄습니다. 이 설비는 스파크 대신 수출 효자 종목인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생산하는 데 최적화되었습니다. 혼류 생산의 한계: 한 라인에서 경차와 CUV를 동시에 만드는 것은 효율성과 수익성 측면에서 부정적이라는 본사의 판단이 있었습니다. 3. 경차 시장의 트렌드 변화와 판매 부진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도 단종을 앞당겼습니다. SUV 선호 현상: "작아도 높은 차"를 선호하는 트렌드에 따라 경차 시장 내에서도 해치백 형태인 스파크보다는 SUV 스타일인 현대 캐스퍼나 공간 활용성이 좋은 기아 레이로 수요가 옮겨갔습니다. 북미 수출 중단: 스파크의 주요 시장 중 하나였던 북미에서 소형차 인기가 급락하며 수출 물량이 크게 줄어든 점도 생산 유지의 명분을 약화시켰습니다. 💡 요약하자면 스파크는 차 자체가 부족해서라기보다,...

[그떄 그 시절] 고구려·백제·신라 임금차이

 


※ 백제 싫어서 안넣은게 아니고 땅 자료 못구했습니다. 백제땅 양해바랍니다. ㅠ_ㅠ


고구려·백제·신라 임금차이


삼국시대는 고구려, 백제, 신라로 대표되는 고대 국가들이 한반도에서 각기 다른 정치·사회 구조를 갖고 발전하던 시기입니다. 그만큼 신분 제도나 행정 체계, 그리고 관료에게 지급되는 ‘임금’ 또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왕족, 귀족, 중소 관료, 그리고 일반 백성의 경제적 삶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삼국의 급여 제도를 통해 각국의 행정력과 사회 구조를 심층 탐구해보겠습니다.




고구려 급여 체계의 특성과 구조

고구려는 초기에는 군사 중심의 사회였고, 중앙집권화가 진행되며 관료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관직별로 일정한 급여가 지급되는 제도가 나타났습니다. 고구려의 관료는 대부분 귀족 출신으로, 이들에게는 토지와 노비, 곡식, 물품 등의 형태로 보상이 제공되었습니다.

특히 고구려는 ‘경위제(京位制)’라고 불리는 중앙 관직 체계를 운영했으며, 관등은 14등급으로 세분화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본인의 관등에 따라 땅을 나누어 받고, 농민을 부려 농산물이나 공물을 통해 실질적인 ‘임금’을 받았습니다. 1등급인 대대로는 왕족과 고위 귀족이 독점했으며, 이들은 수천 석의 곡물을 세금으로 받았고, 전쟁에서 전리품도 상당 부분 차지했습니다.

하위 관료나 지방의 촌장급 관리들도 일정량의 공물을 받았지만, 고위층과의 격차는 매우 컸습니다. 왕족과 귀족은 토지와 인력을 소유하며 반자율적인 지배를 할 수 있었던 반면, 일반 서민은 세금과 군역 등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매우 컸습니다. 고구려의 급여 체계는 일종의 봉건적 성격을 띠고 있어, 오늘날의 급여 개념과는 차이가 있으나, 그 나름의 ‘경제적 보상 시스템’이 분명 존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백제의 신분제와 급여제도의 특징

백제는 고구려보다 좀 더 유연한 관료제를 가지고 있었으며, '관등제(官等制)'와  '내신좌평제'**라는 체계를 통해 국가 운영을 관리했습니다. 특히 백제는 중앙 귀족의 권한이 강했고, 이들이 지방까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급여 체계도 귀족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백제의 관등은 16등급까지 나뉘며, 6등급 이상을 ‘좌평’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들은 행정, 군사, 의례, 사법 등 국가 기능을 분담했고, 좌평 이상은 왕으로부터 금, 포, 벼 등의 실물 급여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화폐보다 실물경제 중심이었기 때문에 급여 역시 쌀, 옷감, 말, 토지 등의 형태로 지급되었습니다.

일반 관리나 군사 계급은 매년 정해진 양의 곡물과 의류를 받았으며, 지방 관리나 중소 귀족도 지방 세력을 통해 스스로의 경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서민층은 세금과 부역의 의무가 있었지만, 전쟁 포로나 부역자로 징발될 경우 일정한 품삯 형태로 곡물이나 포(布)를 받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는 백제가 다른 삼국보다 상대적으로 실용적이고 유연한 급여 운영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신라의 골품제와 보상 구조

신라는 삼국 중 가장 체계적인 '신분제도인 ‘골품제(骨品制)’ 를 통해 사회 구조를 형성했습니다. 이에 따라 관직 진출은 물론 받을 수 있는 급여의 수준도 골품에 따라 명확히 구분되었습니다. 진골 귀족은 최고위직을 독점했으며, 6두품, 5두품 등의 중간 신분은 중소 관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신라의 관직은 17관등 체계로 이루어졌으며, 각각의 관등에 따라 지급되는 실물 급여가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보상으로는 벼, 보리, 옷감, 말, 농기구 등이 있었고, 특히 ‘식읍(食邑)’과 ‘녹읍(祿邑)’ 제도를 통해 토지세 수입을 제공받았습니다. 식읍은 공신이나 고위직에게 주는 형식이고, 녹읍은 일반 관료의 급여 개념으로 운영됐습니다.

서민 계층은 농사와 수공업을 통해 생계를 이어갔고, 국방과 토목 등의 부역에 참여하면 일정량의 곡식이나 의복을 품삯으로 받았습니다. 주목할 점은 신라가 통일 이후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하면서, 급여의 표준화 및 관리감독 체계를 정비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삼국 중에서도 가장 현대적 급여 시스템에 가까운 운영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리 및 요약: 삼국의 임금제도는 사회구조의 축소판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기 다른 관직 구조와 신분제도를 바탕으로 한 급여 시스템을 운용했습니다. 고구려는 군사 중심의 봉건적 구조, 백제는 실용 중심의 분권적 구조, 신라는 신분제 기반의 체계적 보상 구조를 보였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월급제는 아니지만, 실물로 지급된 보상은 당시 사회에서 생존과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였습니다. 이처럼 임금 체계를 통해 각국의 사회 구조와 권력 분포를 이해할 수 있으며, 현대 사회와의 차이점과 연결점 또한 발견할 수 있습니다.



※ 고구려 화폐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건강정보] 한의원 한약 가격이 많이 비싼이유.

04월 21일 과학의 날

한국프로야구 우승하면 뭐가 좋을까? KBO 리그 최신 혜택 정리